'남명기념관'에서 '성성문'을 거쳐 나와
'남명기념관'의 앞길 '남명로'를 건너면
'선조대왕사제문국역비'가 먼저 보여요.
'산천재'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남명 선생이 돌아가시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높이 평가하신 선조께서
제문을 내리셨어요.
제문에서 선조대왕은 남명 선생을
'인자한 나라의 큰 어른'이라 칭하며 애도했다고 해요.
임금(선조대왕)이 내린 제문(사제문)을 한글로 번역(국역)하고 새긴 비석(비)이
'선조대왕 사제문 국역비'예요.
'산천재'는
남명 선생(1501-1572)이 61세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곳이에요.
(산천재 주소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 394)
'선조대왕 사제문 국역비'와 '산천재' 사이의 아담한 공원이에요.
'산천재'의 출입문이 보이네요.
'산천재' 출입문 앞이에요.
대문을 들어서자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이고
마당 가운데에 선생이 직접 심어 키우셨다는 '남명매'
그리고 '산천재' 건물이 보여요.
'산천'은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재'는 조용히 공부하고 수양하는 곳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남명 선생은
천왕봉을 바라보며 '산천재'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후학양성을 위해 노력하셨겠지요.
'산천재'를 찾은 시기가 4월 말이라
꽃은 이미 지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어요.
460년이나 된 매화나무에
이렇게 실한 매실이 달리다니 놀랍기만 해요.
선생의 깨어있는 정신을 보는 것만 같았어요.
'남명문집 목판'이 보관되었던 곳이에요.
남명 선생은
벼슬보다 양심을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며
제자들과 함께 바른 길을 걸었어요.
매 순간 마음을 다잡으며 살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남명 선생이 돌아가시고 20년이 지난 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제자 정인홍, 곽재우 등이 의병을 모아
선생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남명 선생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매 순간 묻고 계신 것 같아요.
'바르게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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